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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정말 우리나라 기업 얘기가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4일 발표된 전국경제인연합회 ‘500대 기업 일·가정 양립과 제도’ 조사에 따르면 기업 10곳 중 8곳(83.2%)은 ‘여성인재 활용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또 10곳 중 8곳 가까이(78%) ‘법정의무제도 이상의 출산·육아 지원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대부분 잘하고 있다는 말인데, 도대체 왜 여전히 일하는 여성, 일하는 엄마의 아우성은 계속될까. 그저 엄살일까.

찬찬히 뜯어보면 같은 조사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대부분의 기업이 여성인재 활용 제도로 꼽은 제도는 ‘여성인재 육성 교육·프로그램’(30.9%·복수 응답), ‘여성친화적 근로문화 조성을 위한 위원회 등 협의기구 설치’(23%) 등이다. ‘경력단절 여성 고용’(18.8%), 신규 채용의 여성 할당(16.8%), 진급자를 여성에게 할당(11%)처럼 실질적 여성 인력 활용으로 이어지는 제도 도입률은 상대적으로 낮다.

사실 대기업의 여성인재 육성 프로그램의 종류는 그리 다양하지 않다. 대부분 몇 년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여성 리더십’ 고취 행사와 여성 네트워킹 행사다. 이는 여성 임원이 여직원들에게 ‘일·가정 양립 비결’ 노하우를 전하고 고충을 들어주는 자리다. 하지만 거의 움직이지 않는 대기업 여성 임원 비율(2.3%·여성가족부)로 볼 때 여성 리더 배출에 큰 도움이 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비혼 여성, 무자녀 여성을 배제하는 역효과도 있을 수 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기업이 마련한 출산·육아 지원제도 종류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응답 기업 10곳 중 6곳은 ‘여성 전용 휴게실 설치’(59.7%)를 출산·육아 지원책으로 분류하고 있었다. 근로자 휴게시설은 사람이면 당연히 필요한 공간이다. 이를 설치한 뒤 일과 가정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니 한숨이 나온다. 여성 근로자가 가장 필요하다고 꼽는 유연근무제를 시행하는 기업도 10곳 중 4곳(41.4%)에 그쳤다.

“엄마를 찾는 아이 때문에 휴가 내고 반차 내면서 회사 다니기 정말 힘들었다. 다양한 근로 형태가 있었더라면 퇴직 유혹의 ‘고비’를 넘겼을 동기가 많았을 것이다.” 올해 자녀가 중학교에 가면서 겨우 한숨 돌렸다는 한 대기업 여성 부장의 말이다.

기업이 출산·육아의 문제를 여성만의 문제로 보고 있다는 ‘혐의’는 여전하다.

기업 관계자들은 “남성 육아휴직 신청 건수는 한 자릿수”라고 전한다. 남성이 집에서 애를 보겠다고 휴직하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정말 일과 가정의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엄마의 영역으로 고착화된 육아를 부모의 영역으로 확대해야 한다. 그러기 전에 일하는 여성의 고충은 줄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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